역사속 묵상가 - 칼빈, 고통의 문제 답하다
스위스 제나바에서 활동한 종교 개혁자 존 칼빈(1509-1564)
프랑스 누아용(Noyon)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인문학 수업을 받았으며 오를레앙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는데, 이 일은 소년 칼빈에게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제가 되려고 교회에서 주는 성직록을 받았으나, 당시 성직은 하나님께 헌신된 자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유력한 교회 인사들에게 주거나 사고파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가 사랑한 교회가 그 근본에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성직록을 반납해야 했다.
성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종교 개혁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당신 사회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생각은 급진적으로 보였고, 그는 도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 신앙과 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그런 딱딱한 책을 보면 칼빈이 냉정한 사람 일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그의 설교집을 보면 그의 신앙과 인간미를 잘 보여준다.
칼빈의 욥기 설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당신의 원하시는 대로 주관하실 권한이 있으며, 우리가 처음 언뜻 보면 하나님이 냉엄하게 행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불평하지 않도록 우리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면서, 어째서 우리를 징계하시는지 그 이유를 선언해 주시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욥기는 욥의 성품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우스 땅에 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1:1)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을 칼빈은 "자기의 마음과 생각과 모든 감정들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보이며, 다만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헌신하기를 추구하는 경우를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직하다'는 말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한다.
칼빈은 당시 교황주의자들과 달리 올바른 신앙의 척도를 외적인 형식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태도와 거기서 비롯한 삶에서 찾았다. 이런 견지에서 욥은 그에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범이다.
그런데 욥기는 모범적인 신앙인의 성공과 번영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마치 신에게 버림받고 저주받은 것 같은 한 인간, 욥에 관한 책이다. 그는 재물과 자식들을 잃었고, 가장 가까운 아내조차도 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말한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그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이 당한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욥에게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설명에 따른다면 욥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온 원인을 알려고 한다.
하지만 욥은 그런 인과관계의 원리에 따라서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불행과 행복을 과거의 행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인과론적 사고에 갇혀 있는 인간은
성공을 거두면 자신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불행이 닥쳐오면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욥은 인간적인 부와 행복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인정할 수 있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불행도 자신의 잘못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욥은 불행이 닥쳐왔을 때 그 불행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다시르시는 것이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위해서 좋을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면 그것이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여 좋다는 관점, 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칼빈은 유한한 인간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인간은 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수 있다.
욥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욥의 이런 태도와 달리 사람들은 스스로가 의롭다고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자기를 기만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의로운 인간이라 평가하기 위해서 타인과 비교해 볼 때 의롭다고 생각하거나, 이타적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불의를 감추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자기기만과 위선의 배후에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교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칼빈에게는 고통이라는 약이다.
칼빈은 인간이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완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말로 하는 설득을 통해서 변화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악덕의 근원인 교만한 마음을 고통으로 꺽으심으로써 인간의 자기중심적 성향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신다.
20세기 기독교 변증가인 루이스(C. S. Lewis)의 말처럼 고통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은 개인적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도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진정한 지식을 갖게 된다. 욥과 같이 훌륭한 사람도 고통을 받으면 더욱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 칼빈, 고통의 문제에 답하다. 임형권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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